글리코·모리나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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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은 1984년부터 1985년까지 일본에서 발생한 일련의 기업 협박 및 식품 테러 사건이다. 이 사건은 에자키 글리코 사장 납치 사건으로 시작되어, 글리코, 마루다이 식품, 모리나가 제과, 하우스 식품, 후지야 등 여러 식품 회사를 대상으로 협박과 독극물 혼입 등의 범행이 이어졌다. 범인들은 '괴도 21면상'을 자칭하며 경찰을 조롱하고, 식품에 청산나트륨을 넣어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수사 과정에서 '여우 눈의 남자'로 묘사되는 용의자가 등장했지만, 범인을 특정하지 못하고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이 사건은 식품 안전에 대한 우려를 높였고, 관련 법률 제정과 식품 안전 대책 강화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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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코·모리나가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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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개요 | |
명칭 | 글리코·모리나가 사건 |
정식 명칭 | 경찰청 광역 중요 지정 114호 사건 |
발생 장소 | 일본 효고현·오사카부 |
발생 날짜 | 1984년 ~ 1985년 |
사건 종류 | 기업 연속 협박, 납치 사건 |
범행 수단 | 식품에 독극물 혼입 유괴 |
공격 대상 | 에자키 글리코 마루다이 식품 모리나가 제과 하우스 식품 후지야 스루가야 |
피해자 | 에자키 가쓰히사 등 |
범인 | 불명 |
동기 | 불명 |
관할 | 오사카부 경찰·효고현 경찰 등 |
추가 정보 | |
경찰청 지정 | 경찰청 광역 중요 지정 114호 사건 |
관련 자료 | NHK 아카이브 |
미해결 사건 | NHK 미해결 사건 |
사건 목록 | NHK 미해결 사건 목록 |
2. 사건 일지
2. 1. 에자키 글리코 사장 납치 사건 (1984년 3월)
1984년 3월 18일 오후 9시경, 권총과 소총으로 무장한 두 명의 가면을 쓴 남성이 니시노미야[2]에 있는 에자키 글리코 사장 에자키 가쓰히사의 자택에 침입했다.[3] 범인들은 먼저 에자키 사장 어머니의 집에 침입하여 아들의 집 열쇠를 요구했다.[4]에자키 가쓰히사의 집에 들어간 후, 두 명의 가면을 쓴 남성들은 그의 아내와 큰딸을 묶어 욕실에 가둔 뒤,[3] 목욕 중이던 에자키 가쓰히사를 알몸 상태로 납치했다.[4] 에자키는 오사카 이바라키[2]의 작은 창고로 끌려갔다.
납치범들은 회사 임원에게 공중전화 부스에 있는 몸값 요구 메모를 알려주었다. 몸값은 10억 엔과 100킬로그램의 금괴였다.[3] 그러나 사흘 후인 3월 21일, 에자키는 창고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2] 에자키의 증언에 따르면, 도카이도 신칸센 차량기지 근처를 흐르는 아위가와 강변에 있는 치수 조합의 수방 창고에서 스스로 빠져나와 셋쓰시의 오사카 화물 터미널역 구내로 달려가 현장에 있던 작업원들에게 무사히 구조되었다.
2. 2. 에자키 글리코 협박 및 방화 사건 (1984년 4월 ~ 6월)
1984년 4월 2일, 에자키 글리코의 사장 에자키 가쓰히사(江崎勝久)의 자택에 4월 8일 지정 장소에 현금 6000만 엔을 가져오라는 협박 편지가 도착했다. 협박 편지에는 염산이 든 안약 용기가 동봉되어 있었다. 4월 8일, 경찰이 현금 인계 장소에 매복했지만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다.[5]4월 8일, 범인 그룹은 오사카의 마이니치 신문과 산케이 신문(産経新聞)에 편지를 보냈다. 언론사를 향한 최초의 도전장이었으며, 일반 대중에게 공개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편지는 무기명이었고, 봉투 발신인 이름은 에자키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같은 날짜로 작성된, "경찰 바보들아"로 시작하는 편지에서는 경찰의 수사 능력을 조롱하고 힌트를 주겠다며, 에자키 친척, 니시노미야 경찰, 홍수 예방 대책 본부에는 범인이 없으며, 범인이 산 차는 회색이고, 산 음식은 다이에이(다에이)에서 샀다고 밝혔다.[5]
4월 10일 오후 8시 50분경, 오사카시 니시요도가와구에 위치한 에자키 글리코 본사에서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 공무부 시작실에서 시작된 불은 인접한 작업원 탈의실로 번져 약 150㎡가 전소되었다. 같은 날 오후 9시 20분에는 본사에서 약 3km 떨어진 글리코 영양식품 차고에 주차되어 있던 미쓰비시 란서밴이 방화되었다. 범인은 휘발유가 담긴 용기에 천을 채워 불을 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발화 직후 모자를 쓴 수상한 남자가 가방을 들고 도망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4월 16일에는 이바라키현에서 염산이 들어있는 플라스틱 용기와 글리코를 협박하는 편지가 발견되었다.[6]
4월 23일, 에자키 글리코에 1억 2000만 엔을 요구하는 협박 편지가 도착했다. 현금 인계일은 4월 24일로 지정되었으나, 범인은 레스토랑에서 명신 고속도로 스이타 서비스 에리어(吹田サービスエリア)의 공중전화 부스를 거치며 현금 인계 운전자를 따돌리고 나타나지 않았다. 같은 날, 범인들은 언론사에 두 번째 도전장을 보냈고, 이후 "괴도 21면상"(かい人21面相)을 자칭하게 된다. 이 명칭은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의 소설 『소년 탐정단』(少年探偵団) 시리즈에 등장하는 괴인 20면상(怪人二十面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멍청한 경찰들께"로 시작하는 이 편지에서 범인들은 경찰의 수사 노력을 비웃으며, "모든 범죄는 거짓말로 시작된다"는 속담을 언급했다.[9] 또한, 공장 측면 직원 출입구로 들어갔고, 사용한 타자기는 PAN-writer이며, 플라스틱 용기는 길거리 쓰레기였다는 힌트를 제공했다.[10]
5월 10일에는 마이니치 신문, 요미우리 신문, 산케이 신문, 아사히 신문에 괴인 21면상 명의로 "글리코 제품에 청산소다를 넣었다"는 도전장이 도착했다. 도전장에는 전국에 청산소다가 들어간 제품을 뿌릴 것이라는 예고와 함께 "글리코를 먹고 무덤으로 가자"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로 인해 대형 슈퍼마켓들은 글리코 제품을 철수하기 시작했다.
5월 31일, 에자키 글리코에 3억 엔을 요구하는 협박 편지가 도착했다. 6월 2일 셋쓰시(摂津市) 내 레스토랑 주차장에 3억 엔을 실은 차를 두도록 지시했다. 오사카부 경찰(大阪府警察) 본부 형사부 수사 1과(捜査第一課) 특수범죄수사계(特殊事件係)는 30명 체제로 범인을 기다렸으나, 범인에게 협박받은 운전자가 나타났을 뿐, 진짜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6월 26일, 범인 그룹은 언론사에 “아이 울리면 우리도 곤란해 에자키 글리코 용서해 줄게”라는 내용의 도전장을 보내 에자키 글리코에 대한 협박 중단을 선언했다. 이들은 “유럽으로 간다. 내년 1월에 돌아온다”며 해외 도피를 시사했으나, 이후 다른 도전장에서 이를 번복했다.
2. 3. 마루다이 식품 협박 사건 (1984년 6월 ~ 7월)
1984년 6월 22일, 오사카부 다카츠키시의 마루다이 식품(丸大食品)에 "글리코와 같은 신세를 당하고 싶지 않으면 5천만 엔을 준비하라"는 협박 편지가 도착했다.[19] 범인은 파트타임 직원 모집 신문 광고 게재를 통해 은밀한 거래에 응할 것을 요구하고, 다카츠키시의 상무 자택에 보스턴백에 현금을 준비해 대기하도록 요구했다. 마루다이 식품은 경찰에 신고했고, 오사카부 경찰 본부의 지시에 따라 범인의 요구대로 행동했다.[19]6월 28일, 범인으로부터 여성의 녹음된 목소리로 "다카츠키역(高槻駅) 앞 간판에 지시서가 붙어 있으니 확인하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은 수사반을 다카츠키시 상무 자택과 주변에 배치하고, 마루다이 직원으로 변장한 형사를 다카츠키역으로 보냈다. 간판에는 "일본국유철도(日本国有鉄道, 국철) 다카츠키역에서 지정하는 시간의 교토역(京都駅)행 열차를 타고 왼쪽 창문에 흰 깃발이 보이면 차창으로 돈이 든 보스턴백을 던져라"는 지시가 적힌 타자 지시서가 있었다.
마루다이 직원으로 변장한 형사를 포함한 7명의 형사들은 지정된 열차에 탑승했다. 그러나 흰 깃발이 보이는 구간에 수사반 배치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아 보스턴백을 던지지 못하고 교토역까지 가게 되었다. 열차 안에서 형사들은 여우눈의 남자(キツネ目の男)를 발견하고 감시했다. 여우눈의 남자는 체격이 좋고 선글라스를 쓴 키가 큰 남자로, 머리는 짧고 퍼머를 했으며 "여우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고 묘사되었다.
형사들은 귀가길 열차에도 탑승한 여우눈의 남자를 계속 경계했지만, 현금 인도 시 현행범으로 체포하려던 수사본부는 형사에게 체포 권한을 주지 않고 명령이 있을 때까지 접촉을 제한했기 때문에, 여우눈의 남자를 놓치고 말았다.
7월에도 마루다이식품 이사 자택에 현금을 요구하는 협박 편지가 도착했다. 7월 6일, 어린이 목소리 녹음으로 지정 장소에 오라는 지시가 있었으나, 장소가 4번 변경된 후 마지막 지정 장소에 현금 가방을 두라는 지시에도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모리나가 제과 협박 사건이 발각된 후, 11월에 범인이 언론에 보낸 편지에서 다카츠키시의 식품회사를 협박했다고 언급하며 "나쁘게 해도 괜찮다 21면상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라며 마루다이식품의 광고 카피 "장난을 쳐도 좋다 씩씩하게 자라주었으면 한다(わんぱくでもいい たくましく育ってほしい)"를 비튼 말을 사용해, 마루다이식품 협박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2. 4. 모리나가 제과 협박 및 독극물 혼입 사건 (1984년 9월 ~ 1985년 2월)
1984년 9월 12일 아침, 오사카부 오사카시의 모리나가 제과 간사이 판매 본부에 수천만 엔을 요구하는 협박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에는 "글리코와 같은 꼴을 당하고 싶지 않으면 1억 엔을 내놓아라",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제품에 청산나트륨을 넣어 점포에 둘 것이다"라고 적혀 있었고, 청산가리가 들어 있는 과자가 동봉되어 있었다.[21] 9월 18일에는 범인으로부터 간사이 지사로 전화가 걸려와, 어린이 목소리로 현금 인수 장소를 지정한 내용의 녹음을 5번 반복해서 재생했다. 지정된 장소에 가 보았지만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전화 내용은 10월 11일에 일반에 공개되었다.[20]1984년 10월 7일부터 10월 13일까지 오사카부, 효고현, 교토부, 아이치현의 슈퍼마켓과 편의점에서 "독약 들어있음 위험 먹으면 죽는다 괴도 21면상(かい人21面相)"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은 모리나가 제품들이 잇따라 발견되었다. 이들 과자 안에는 청산나트륨(青酸ソーダ)이 섞여 있었다. 청산나트륨이 섞인 과자는 13개였다.[22] 10월 8일에는 한큐백화점 등에도 모리나가 제품을 취급하지 말라는 협박 편지가 도착했다. 이 편지에는 "우리에게 거역했으니 모리나가를 망하게 하겠다"는 내용이 있었다.[22] 10월 15일에는 NHK 오사카 방송국에 청산나트륨 정제가 배달되었다. 각 신문사에 보낸 도전장에는 이 청산나트륨으로 몇 명을 죽일 수 있는지 퀴즈를 내고, "상품"으로 청산나트륨이 든 모리나가 제품을, "주소"로는 "경시청(警視庁) 총무부(総務部) 기획과장(きかく課長)"이라고 적었다.[22] 경찰은 10월 16일 편의점에 청산나트륨이 든 제품을 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용의자의 CCTV(防犯カメラ) 사진을 공개했다.[22]
1985년 2월 13일, 언론사에 발렌타인데이 파괴를 주장하는 도전장이 배달되었고, 도쿄도와 아이치현에서 "독이 들어있음 위험"이라고 적힌 라벨이 붙은 청산가리가 든 초콜릿이 잇따라 발견되었다. 청산가리가 들어있지 않은 것에는 "독 없음 안심"이라고 적혀 있었다.
2. 5. 하우스 식품 협박 사건 (1984년 11월)
1984년 11월 7일, 하우스식품에 우라가미 이쿠오 사장 앞으로 현금 1억 엔을 요구하는 협박 편지가 도착했다.[23] 협박 편지에는 청산가리가 섞인 하우스 시튜와 에자키 글리코의 에자키 카츠히사 사장을 납치했을 때 녹음한 사장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 테이프가 동봉되어 있었다.11월 14일, 범인들은 교토시 후시미구의 레스토랑 "사토"를 시작으로 여러 장소를 거쳐 현금 전달 장소를 변경하며 경찰의 추적을 따돌렸다.[23] 이 과정에서 교토부경 형사들이 명신 고속도로 교토 남 인터체인지 부근에서 '여우 눈의 남자'를 목격했지만, 체포에는 실패했다.[23]
오쓰 서비스 에리어에서는 시가현경 형사들이 '여우 눈의 남자'를 발견했으나, 직무 질문 금지로 인해 놓치고 말았다.[24] 이후 오사카부경 형사들이 현금 수송 차량을 감시하던 '여우 눈의 남자'를 발견했지만, 역시 미행 및 직무 질문 권한이 없어 놓치고 말았다.
범인들은 고사즈 파킹 에리어에 흰 천을 설치하고 그 아래에 지시서를 숨겨둔 것처럼 위장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과정에서 시가현경 순찰차가 흰색 라이트밴(닛산써니AD밴, 번호판 오사카 46ほ 2189)을 발견하고 추격전을 벌였으나, 놓치고 말았다.[25] 이 차량은 도난 차량으로 밝혀졌으며, 내부에서는 무전기가 발견되었다.[25]
11월 19일, 하우스식품에 협박 중단을 암시하는 편지가 도착했다. 12월 11일에는 순찰차 탑승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된 '여우 눈의 남자' 몽타주가 공개되었다.[26]
이후 '여우 눈의 남자'를 검거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시가현경 본부장이 자살(자해)했다.[28]
2. 6. 후지야 협박 사건 (1984년 12월 ~ 1985년 1월)
1984년 12월 7일, 후지야(불二家) 노무부장 자택에 협박 편지가 도착했다. 협박 편지에는 테이프와 청산소다가 동봉되어 있었다. 12월 15일, 후지야 노무부장 자택에 다시 협박 편지가 도착하여, 12월 23일에 오사카 우메다의 백화점 옥상에서 2000만 엔을 뿌리라고 요구했다. 후지야는 이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12월 26일, 도쿄의 슈퍼마켓 사장 자택에도 협박 편지가 도착했다. 이 편지는 1월 5일에 후지야에 이케부쿠로의 빌딩 옥상에서 2000만 엔을 뿌리라고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후지야는 이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1985년 1월 11일, 후지야 협박 사건이 처음 보도되면서 21면상이 후지야를 협박하고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사건 발생 직전인 12월 4일, 홋카이도 이와나이 군의 아마추어 무선가가 아마추어 무선의 7MHz 대역 오프밴드에서 "21면상"과 "탐삼랑"이라고 자칭하는 두 사람의 교신을 우연히 도청·녹음했다. 이 교신에는 "약은 준비되었나?", "12월 16일, 항공권이 왕복 확실하게 예약되어 R6(아마추어 무선에서 오키나와 우정 관리 사무소(현 오키나와 종합 통신 사무소)의 지역 번호로 추정)으로 간다면 당일치기로 반드시 발각되지 않도록 돌아오도록 해라", "불二가는 역시 돈을 지불하지 않겠다는 건가?", "불二가는 포기하는 편이 좋을 거다"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수사본부는 범인 그룹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수사를 진행했고, 일부는 언론에 공개되었다. 그러나, 장거리 전화로도 충분할 통신을 도청될 가능성이 높은 아마추어 무선을 사용했는지는 불명이다.
2. 7. 슌가야 협박 사건 (1985년 3월)
1985년 2월 24일, 언론에 모리나가 제과에 대한 협박을 종식시키는 휴전 통고가 도착했다.[27]그 직후인 3월 6일, 와카야마현의 유서 깊은 일본 과자 회사인 슌가야(駿河屋)에 5000만 엔을 요구하는 협박장이 도착했다.[27]
하지만 3월 8일, 범인으로부터 현금 인수를 연기한다는 통고가 도착했다. 그 후, 범인으로부터 슌가야로 연락은 없었다.[27]
2. 8. 사건 종결 (1985년 8월)
1985년 8월 7일, 하우스 식품 협박 사건에서 용의 차량을 놓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시가현 경찰 본부장 야마모토 쇼우지(山本昌二)가 자택에서 등유를 끼얹고 분신 자살했다.[28] 그는 "책임은 모두 내게 있다. 차량을 놓친 경찰관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공언하며 1985년 2월 사임 의사를 밝혔지만 곧바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같은 해 8월 7일 사임 인사 기자회견 후 유서 3통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28] 유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28] 실수를 견디지 못한 것으로 해석된다.8월 12일, 범인 측은 시가현 경찰 본부장의 죽음에 대한 조문을 표하며 "먹을거리 회사 괴롭힘도 이제 그만"이라는 종식 선언을 보냈다.[13][2]
이후 범인의 움직임은 완전히 멈췄다. 협박 편지를 받은 회사 중 하나였던 하우스 식품 공업 사장 우라가미 이쿠오(浦上郁夫)는 사건의 종식을 같은 회사 창업주이자 전 사장인 아버지의 묘소에 보고하기 위해 8월 12일 일본항공 123편에 탑승했다가 추락 사고로 희생되었다.
1994년 에자키 글리코 사장 납치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고, 2000년 2월 13일에는 도쿄와 아이치에서 발생한 청산가리 든 과자 살포 사건을 포함한 28건 모두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13][2] 사건 수사에 참여한 수사관은 총 130만 1천 명, 수사 대상은 12만 5천 명이었다.[29]
3. 수사 및 용의자
경찰은 글리코·모리나가 사건 해결을 위해 대대적인 수사를 펼쳤지만, 범인을 특정하는 데는 실패했다.[45][46] '여우 눈의 남자'로 묘사되는 용의자의 몽타주가 공개되었으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14]
범인들은 경찰 무선 도청, 어린이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 사용 등 치밀한 수법으로 경찰의 수사에 혼선을 주었다. 1978년에는 에자키 글리코(江崎グリコ) 상무에게 돈을 요구하는 테이프가 배달되었는데, 이 테이프에는 부락해방동맹 간부를 자칭하는 노년 남성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발신자는 극단주의 세력 학생이 에자키 납치, 글리코 방화, 청산가리 혼합 과자 살포 등의 범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막기 위해 돈을 요구했다. 이 테이프의 내용은 이후 발생한 글리코 협박 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아, 수사본부는 이 발신자를 범인 그룹의 일원으로 보고 음성 감정 자료로 활용했다.[30] 1993년에는 효고현 경찰이 이 테이프를 1분 정도로 편집하여 공개했다.
경찰은 전직 야쿠자 두목,[45][46] 북한 공작원,[42][43][44] 극좌·극우 단체[30] 등 다양한 용의자를 조사했으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는 찾지 못했다. 특히 평론가 겸 논픽션 작가인 미야자키 마나부는 '여우눈의 남자'와 매우 닮았다는 이유로 중요 참고인으로 조사받았으나, 알리바이가 확인되어 수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14]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톱파모노"라는 책을 썼다.
산케이 신문과 주간문춘은 수사선상에 올랐던 북한 공작원 관련자 그룹에 대해 보도했다. 이들은 효고현의 무역회사 사장을 중심으로, 에자키 글리코 사장을 원망하는 북한 공작원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 그룹이 글리코에 요구했던 100kg의 금괴를 가지고 있었던 점 등으로 수사가 진행되었으나, 주모자로 지목된 사장은 이미 사망했고, 음성 감정 결과 다른 사람으로 밝혀져 수사가 종결되었다.[42][43][44]
1990년경부터 수사본부는 폭력단 출신 사업가들을 중심으로 한 그룹을 주목했다. 전직 두목이 과거 닛신식품(グリコ)을 협박한 전력이 있고, 피해 기업 관계자로부터 거액의 돈이 입금된 사실, 범행에 사용된 것과 동일한 종류의 일본어 타자기와 택시 회사 폐차를 친척이 소유하고 있다는 점 등이 의혹의 근거였다. 그러나 주요 멤버들에게는 알리바이가 있었고, 물증도 없어 수사는 종결되었다.[45][46]
부락 문제 관계자가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설도 제기되었다. 범인들이 사용한 물품 대부분이 사회적 소수자가 많은 마을 근처의 슈퍼마켓에서 구입되었고, 협박 테이프에 가죽 제품 제작에 사용되는 독특한 재봉틀 소리가 들어 있었다는 점 등이 근거로 제시되었다.
4. 사건의 특징 및 영향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은 처음에는 단순한 유괴 사건으로 시작되었으나, 이후 대형 식품회사들이 잇따라 협박을 받고 실제로 청산나트륨이 들어간 식품이 배포되면서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범인들은 기업뿐만 아니라 신문사와 잡지사에도 도전장을 보내 경찰을 조롱하고 도발하는 등 '극장형 범죄'의 성격을 띠었다.
범행에 사용된 유류품은 많았지만, 대량으로 유통되는 상품이었기 때문에 범인을 특정하기 어려웠다. 범인들은 경찰 무선을 도청했는데, 당시 경찰 무선은 일반인도 쉽게 도청할 수 있는 FM(아날로그) 방식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시청은 도청 방지를 위해 암호화된 디지털 방식의 무선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식품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유통식품에 대한 독극물 혼입 등의 방지에 관한 특별조치법'(일명 글리코법)이 제정되었다. 또한, 에자키 글리코 제품을 비롯한 식품업계 전반에서 포장을 개봉하면 원상 복구가 불가능하도록 개선하는 등 식품 안전 대책이 강화되었다.
사건 발생 당시, 범인들은 요미우리 신문에 보낸 도전장에서 약 30년 전 모리나가 유업이 일으킨 모리나가 비소 우유 중독 사건을 언급하며 모리나가 제과를 도발하기도 했다.
글리코와 모리나가는 이 사건으로 인해 경영에 큰 타격을 입었고, 제품은 일시적으로 철거되었으며 광고도 반년간 중단되었다. 두 회사는 이후 로고타입을 변경했다.
5. 미해결 사건 및 공소시효 만료
6. 유사 사건
본 사건과 유사하게, 시판 식음료에 독극물을 혼입한 사건으로는 1977년의 '''청산가리 콜라 무차별 살인 사건'''이 있다. 이 사건에서는 도쿄에서 2명이 사망하고, 오사카에서 1명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후, 혼입 대상을 콜라에서 본 사건과 같은 초콜릿으로 변경한 사건이 발생했지만, 모두 살인은 미수에 그쳤다. 그 중 2월 14일의 사건에서는 사회적 메시지를 남기려는, 본 사건과도 연결되는 행위가 보였다.
또한 1982년, 미국에서 존슨앤드존슨사의 타이레놀에 시안화칼륨이 혼입되어 7명이 사망하는 사건(en:1982 Chicago Tylenol murders)이 발생했다.
사건이 발생한 1984년부터 1985년에 걸쳐, 괴도 21면상을 모방한 모방범이 식품 기업을 위협하는 기업 갈취 사건이 다발했는데, 여기에는 초등·중학생이 패밀리 컴퓨터를 원해서 네슬레 일본을 갈취한 사건도 있었다.[54]
1985년에는 니코틴이 들어있는 제품을 뿌린다고 위협받은 롯데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3000만 엔을 지불하는 뒷거래에 응했다. 이듬해 1986년에 다시 5000만 엔의 지불을 요구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경찰에 신고하여 당시 55세의 22호라고 자칭했던 남자는 7월 3일에 체포되었다. 이 사건에서 일단 협박범에게 굴복하여 뒷거래에 응한 롯데는 비판을 받았고, 고객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고 변명했다.
이러한 모방범들을, 쓰쿠바 대학 교수 오다 신은 “거머리 범죄”라고 명명했다. 진짜 범인 그룹도 협박 편지에서 가짜와의 거래에 응하지 않도록 기업에 호소했다. 참고로, 범인 그룹은 에자키 가쓰히사의 목소리를 녹음한 테이프를 동봉하여 자신들이 진짜임을 증명했다.[55]
타이완에서는 천면인으로 보도되었고, 닛카·모리나가 사건의 괴도 21면상은 유명했다고 한다. 1984년 12월 27일에 타이중시에 사는 34세 남성이 닛카·모리나가 사건을 모방하여 인스턴트 라면에 독을 넣고 식품 회사에 일본 엔으로 1억 5천만 엔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41시간 후 체포되는 사건이 있었다.[56] 또한 2005년 5월, 타이완 타이중시의 편의점 매장에서 시안화물이 혼입된 병에 든 에너지 드링크 “蛮牛(만우)”가 놓여져, 그것을 구입·음용한 4명이 잇따라 시안화물 중독 증상을 일으켰고, 그 중 남성 1명이 5월 18일 심야에 사망하고, 2명이 중태가 되었다. 이 에너지 드링크에는 PC 프린터로 “有毒、勿喝”(독이 들었으니 마시지 마시오)라고 인쇄된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닛카·모리나가 사건을 모방한 악질적인 장난으로 현지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타이완 보건 당국은 보리타 브랜드 상품의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판매하지 않도록 통지했다. 5월 27일에 범인 남성이 체포되어 갈취를 목적으로 닛카·모리나가 사건을 모방한 것이라고 진술했다(zh:毒蠻牛事件).
이 “닛카·모리나가 사건” 발생 30주년이 되는 2014년, “괴인 28호”라는 이름을 내세운 남성(나이·이름 불명)으로부터 에자키 씨에게 “그 후 30년, 돈도 바닥났다” 등이라고 쓰여진 협박 편지가 보내져 5000만 엔을 요구하는 사건이 있었다. 남성은 협박 미수로 2014년 11월 30일에 체포되었지만,[57] 닛카·모리나가 사건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은 낮다고 여겨지고 있다.[58]
7.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
다카무라 카오루의 1997년 소설 《레이디 조커》(2021년 번역)는 이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15]
2002년,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스탠드 얼론 콤플렉스》의 등장인물인 웃는 사나이는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16]
2021년, 버즈피드 언솔브드가 이 사건을 다루며 여러 가지 이론을 제시했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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